새사연

삼성보고서

청년1966 2009. 6. 30. 00:02

노무현정부의 운명을 바꾼 한편의 보고서 그리고 새사연의 꿈

2009.06.16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

취임 2년을 갓 넘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자의 말이고 보면 이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대한 한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에 400쪽 분량의 방대한 보고서가 전달됩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어젠다>라는 보고서입니다. 그리고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터져나온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을 시작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론’, ‘산업 클러스터 조성방안’ 등 보고서에 담겨있던 내용들이 줄줄이 참여정부의 정책으로 발표되기에 이릅니다. ‘삼성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국정이 굴러간다’는 말이 더 이상 빈말로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삼성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 삼성이 바라는 것을 꿈꾸는 대한민국

삼성경제연구소의 의제 주도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물론 ‘돈’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인력은 박사급 연구진 70명을 포함해 약 120명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2005년 3월 기준). 박사급 연구원을 기준으로 LG경제연구원(13명)과 현대경제연구원(10명)의 6~7배에 이르는 규모이며, 국내 대표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보다도 19명이나 더 많습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쓴 비용만도 1,008억 8,00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스템, 2007년 재무제표).

규모와 더불어 이 연구소의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축은 대한민국 언론의 ‘보고서 베껴 쓰기’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보고서를 통해 원하는 의제를 제시하면 언론이 이를 그대로 인용 보도함으로써 여론을 몰아가는 식입니다.

새사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 10월 한 달간 18개 주요 일간지(종합지ㆍ경제지)의 삼성경제연구소 인용 보도는 무려 251건에 달했습니다. 한 신문 당 14건이니 모든 신문이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이 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 보도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와 정치권은 손쉽게 국정 운영의 방향을 결정하고 정책을 입안해왔습니다. 심지어 금산법이나 공정거래법과 같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법안들마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심각하게 뒤틀려졌던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 한미FTA 체결... 다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

문제는 삼성경제연구소만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30년의 역사는 세계GDP의 세 배를 훌쩍 넘는 엄청난 규모의 초국적 금융자본을 만들어내며 국가라는 마지막 보호막마저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것도, 또 한미FTA 추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기조로 완벽하게 돌아선 것도 어쩌면 다른 선택을 뒷받침할 만한 정책 역량이 준비돼있지 못했던 탓일지 모릅니다.

취임 전까지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하겠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안 돼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 결과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대체 한 달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리겠다는 통보를 해옵니다. 주식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원-달러 환율도 1,200원을 넘어 치솟기 시작합니다.

불안감을 느낀 노무현 정부는 당시 재경부국장, 국방부정책실장 그리고 반기문 청와대 외교안보보좌관 등을 무디스 본사로 급파해 대미정책의 변화를 약속하며 두 달 뒤로 예정된 노 전 대통령의 방미 때까지 시간을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라크 파병을 선언합니다.

참여정부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 존 루더펄드 무디스 사장 등과의 간담회에서 “개방, 규제완화,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을 병행 추진해 나가겠다”며 경제운용의 4대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는 참여정부가 두 달 전 신용등급 유지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약속을 지킨 것이자 출범 석 달 만에 스스로 월가를 찾아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천명한 것입니다.

만일 노무현 정부가 무디스의 신용등급 조정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무디스의 신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맞섰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해 전 세계를 뒤흔든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 이후 무디스를 비롯한 미국 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온갖 파생상품들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며 시장에서 거래되도록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허망한 가정입니다. 2003년 3월 신자유주의가 한창 버블을 만들어내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출범한, 그것도 한 달이 채 안 된 풋내기 정부에게 5년 뒤에 닥칠 금융 위기를 예측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수준은 곧 대한민국 진보ㆍ개혁세력의 수준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정부가 무엇이 이익인지 손해인지조차 따질 역량도 없고, 줏대도 없고 애국심도 자존심도 없는 그런 정부는 아닙니다...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입니다.”(한미FTA 협상 타결 대국민 담화)

만일 담화문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심을 인정한다면 당시 정부에게 필요했던 것은 FTA를 대신할, 그것도 미국과의 FTA라는 자극적인 선택을 대신할 그 무엇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진보ㆍ개혁 세력이 주목할 만한 경제 전략을 제시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재벌 연구소들만이 끊임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대며 국민의 마음을 흔들 뿐입니다.

다음 대통령직인수위를 위한 보고서는 누가 만들 것인가

새사연은 3년 전인 2006년 2월 문을 열었습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당시 단 한 명의 박사급 연구원으로 출발한 새사연이 꼽은 경쟁상대는 바로 삼성경제연구소였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새로운 사회’는 결코 열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새사연에는 4명의 박사급 연구원을 포함해 7명의 상임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동안 600편이 넘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8권의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800명의 회원들이 다달이 회비를 내는가 하면 보건복지분과와 교육분과에서는 회원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의 보건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단순히 삼성경제연구소 하나만을 상대하면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정책 공론장은 이미 여러 재벌연구소와 국책연구소들에 의해 포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사연의 경쟁 상대는 여전히 삼성경제연구소입니다. 그 목표를 포기하는 순간 새사연은 그저 좋은 뜻을 가진 아마추어 연구집단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다음 대통령직인수위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전달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옆에는 또 다른 보고서가 함께 놓여야 합니다. 바로 새사연의 보고서입니다. 허망한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이나 ‘동북아 금융허브론’을 대신해 ‘고용친화ㆍ내수중심의 산업 전략’과 ‘공공성ㆍ안정성 지향의 금융전략’이 담겨 있는 보고서 말입니다.

여러분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뒤에 삼성이라는 재벌이 있다면, 새사연의 뒤에는 800명의 회원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그 800명은 새사연의 든든한 재정 후원자이자 현장 연구원이기도 합니다. 7명으로 120명을 이길 수는 없지만 800명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또 머지않아 800명의 회원이 8,000명이 되고 7명의 상임연구원도 70명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새사연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소박한 꿈을 간직한 채 정직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의 힘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3년 전 독립 싱크탱크라는 무모한 꿈을 현실에 옮길 수 있었고 지금 이 순간 더 큰 꿈을 위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새사연의 힘이 되어주십시오. 여러분의 희망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