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주호야
사랑하는 주호야.
주호가 간디학교에 입학한지도 벌써 4개월이 되었구나. 네 말처럼 참 시간이 빨리도 흐른다. 그치?ㅋ
간디학교에 처음 입학하고 한 달 동안 낯선 친구, 선배들과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느라, 또 새로운 학교환경에 적응하느라 알게 모르게 심리적 압박감을 받았던 네가, 이제는 훨씬 더 여유롭고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니 아빠는 참 기분이 좋다. 그래. 사람은 처음엔 누구나 외부환경에 주눅 들지만 또 금방 적응하고 나아가 그 환경에 참여하는 존재니까.. 앞으로도 수없이 만날 새로운 외부환경에 당당히 맞섰으면 좋겠구나.
벌써 두 달이 훌쩍 넘었구나..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 땅에 아이를 둔 학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참혹하게 죽어간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우리가 참 많이 듣던 말이었다. 일반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늘 하던 말이었다. 고분고분 순종하고, 의심없이 믿고 따르라는 그들의 말이 결국 우리아이들을 죽였다.
아빠는 어른의 한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웠다. 탐욕에 눈이 멀어 생명과 안전은 뒷전인 채 온갖 불법탈법 운행을 한 여객회사나 뒤를 봐준 해피아,관피아 세력들이나, 아니 기업을 돕겠다고 안전규제를 풀어준 정치권과 정부까지...우리가 숨 쉬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어두운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서, 그 어두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죄스러웠다.
그래..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세월호와 같은 참혹한 죽음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것처럼.
이제 아빠는 너희들에게 말하고 싶다. ‘가만히 있지 말라’고. 의심하고, 거부하고, 발칙한 도전을 마다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함께 바꾸자고...!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하다. 아빠가 사는 농촌마을에는 댐 공사로 인해 가뜩이나 물이 부족해 지난달 벼 모내기를 한 논에 잡풀이 많이 났더랬다. 아빠는 며칠 동안 풀을 뽑으면서 ‘거름도 안주고 돌보지도 않은 이 풀들은 모(벼)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잘 자라는 구나’ 새삼 생각이 들었단다. 그럴 것이다. 모(벼)는 모내기 하기전에 추울까봐 비닐도 덮어주고, 거름도 주고, 물도 주면서 키웠지만, 풀은 제 스스로 뿌리내리고 성장하였기에 훨씬 더 튼튼하다.
들풀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고 성장하는 사람은 건강하고 행복하다. 아빠는 우리 주호가 간디학교라는 자유를 누리는 것만큼 자립이라는 힘도 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고 자립적인 사람”. 어때? 근사하지 않니?ㅋ
2-3주만에 너를 만날 때 마다 한 뼘씩 훌쩍 자라난 네 생각을 보며 아빠는 흐믓하다. 동아리 활동이 꿀재미 라며 반짝거리는 네 눈을 발견할 때도 아빠는 참 기쁘다.
가만가만 생각해보면 아빠는 지금껏 네가 있어 참 행복했었구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이말을 꼭 네게 하고싶었었다ㅎ) 물론 가끔씩 아빠가 삐지거나 버럭 성질을 내겠지만 그래도 내말을 꼭 믿어줬음 좋겠다. 알겠지? ㅋㅋ